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, 무슨 글을 쓸 수 있을까.
삶과 죽음
그리고
산 자들의 놀음 앞에서
고인의 명복을 비는 것 외에.
기형도님의 시가 맴돈다.
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
진눈깨비
기형도
때마침 진눈깨비 흩날린다
코트 주머니 속에는 딱딱한 손이 들어 있다
저 눈발은 내가 모르는 거리를 저벅거리며
여태껏 내가 한번도 본 적이 없는
사내들과 건물들 사이를 헤맬 것이다
눈길 위로 사각의 서류 봉투가 떨어진다, 허리를 나는 굽히다 말고
생각한다, 대학을 졸업하면서 참 많은 각오를 했었다
내린다 진눈깨비, 놀랄 것 없다, 변덕이 심한 다리여
이런 귀가길은 어떤 소설에선가 읽은 적이 잇다
구두 밑창으로 여러 번 불런낸 추억들이 밟히고
어두운 골목길엔 불켜진 빈 트럭이 정거해 있다
취한 사내들이 쓰러진다, 생각난다 진눈깨비 뿌리던 날
하루종일 버스를 탔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
낡고 흰 담벼락 근처에 모여 사람들이 눈을 턴다
진눈깨비 쏟아진다, 갑자기 눈물이 흐른다, 나는 불행하다
이런 것은 아니었다, 나는 일생 몫의 경험을 다 했다, 진눈깨비
..유난히 눈이 많던 겨울이었다..
이젠 봄인가 싶더니
하늘은 다시 겨울을 만들고 있다
거리마다 술집이고 술집마다 사람들이다
무슨 얘긴가 싶더니 모두 겨울얘기 뿐이다..
이 삶의 겨울은 언제나 봄을 불러오려나......
